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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생활

개발자의 무덤 FA (Factory Automation)

by Lunethan 2021. 11. 25.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제대로 된 코딩도 배우지 못한 내가 이런 글을 적어도 되나 싶지만 내가 실제로 공장 자동화 직무를 수행하면서 느낀 절망감? 에 대해 기록을 남기고, 또 혹시라도 이쪽 분야를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공유하고자 적어본다.

 

개발자라 함은 대부분 성향이 비슷할거라고 생각한다. 한군데 진득히 앉아서 뭔가를 만드는 것을 좋아하고, 비효율적인걸 못참으며, 육체 노동보다는 머리쓰는게 편하다. 나도 이런 부류 중 하나인데, 개발자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가 저 세가지를 만족시키면서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대체적으로). 물론 SI업계나 이런 분야는 조금 다를 수 있지만, FA라 불리는 공장 자동화 쪽의 개발자들은 저 세가지를 모두 만족시키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왜냐하면 출장이 정말 잦아서 육체적으로 힘들며 시간에 쫒겨 비효율적인 코드가 남발되고 때때로는 머리보다는 몸으로 땜빵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관행들이 우리 회사에만 국한되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FA업계에 있는 한 사람의 푸념글이라고 봐주면 좋겠다.

 

2021.11.19 - [회사생활] - 제조 대기업 취직후 느끼는 장점과 단점

지긋지긋한 출장

재택근무는 언제 할 수 있나요?

개발자들은 굳이 하드웨어와 연관성이 없기 때문에 대체적으로 재택근무에 가장 적합한 직종 중 하나다. 하지만 FA 개발자는 다르다. 장비라는 거대한 하드웨어가 있어야지 개발과 테스트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장비 제어 프로그램 컨셉과 기초 틀을 짜는 극 초기단계를 제외하면 항상 장비가 옆에 있어야 정상적인 테스트를 할 수 있다. 그래, 하드웨어 다루는 개발자니까 옆에 있어야 하는건 어쩔 수 없다 쳐도 공장들이 대부분 지방에 있는 경우가 많아서 자연스럽게 나도 지방으로 가야 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날에는 공장에 있는 시간보다 차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길 때도 있다. 이럴 때면 진짜 자율주행이 필요하다. 테슬라 사고싶다. 

 

더 최악인 것 중 하나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장비의 제어를 하는 경우이다. 이런 장비들은 대부분 CR (Clean Room)이라고 하는 곳에 있는데, 여긴 진짜 정신과 시간의 방도 아니고 최악의 공간 중 하나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를 생산할 때 공기중에 먼지가 있다면 불량인 제품들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CR은 그런 불순물들을 배제하기 위해 있는 곳이다. 문제는 그 불순물에 나도 포함된다는 것이다. 들어갈 때마다 방진복을 입어야 하고 (통풍안되서 개더움), 핸드폰이나 뭐 종이쪼가리도 밖에서 사용하는 종이를 들고갈 수가 없어서 코딩을 할 때 구글링도 못한다. 어떻게 구글 없이 코딩을 하라는거지? 아무튼 이런 공간에서 계속 일을 하다보면 내 두뇌가 구글이 되거나 아니면 자연스럽게 퇴사버튼으로 손이 간다.

출장 보내놓고 왜 돈을 안주니

이건 정말 회사바이회사인데 우리 회사는 출장갈 때 돈 안주기로 악명이 자자하다. 특히 해외출장의 경우 웬만한 중소기업보다 못하다. 식비, 호텔비는 법인카드로 지원이 되지만 해외 출장가있는 사람들이 어차피 똑같은 돈 받을꺼면 왜 3배는 더 고생하는 해외에 나가있겠는가? 참고로 여기서 해외 출장이라고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는데 진짜 한 1년에 6개월을 해외에서 보내보면 그런 말이 쏙 들어갈거다. 해외에 나가면 무슨 국내 근로법에 적용이 안된다고 생각하는건지 이놈의 회사가 진짜 외국인 노동자 다루듯이 매주 토요일에도 일시키고 평일에는 12시간씩 일하고 진짜 고생은 고생대로 한다. 그런데 그렇게 일을 시켜놓고 국내에서 비교적 편하게 일하는 사람들과 돈을 똑같이 준다고 하면 누가 출장을 가고 싶겠는가? 이건 진짜 회사 문제이긴 한데 빨리 고쳐졌으면 좋겠다.

배워도 다른곳으로 이직하기 힘든 기술 스택

장비제어는 곧 하드웨어 제어이기 때문에 아직까지 C++를 많이 사용한다. 요즘은 C++이 생산성이 너무 떨어져서 그런지 C#으로 넘어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미 만들어진 많은 장비들은 C++를 사용하고, 만약 신입이 새로 들어와서 기존 장비코드를 정비하는 업무를 하라고 하면 당연히 C++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요즘 씨쁠쁠 배워서 어디다 쓰나? 당장 개발자 채용공고 사이트만 보더라도 씨블쁠 쓰는곳은 손에 꼽는다. 우리나라는 자바 공화국이기 때문에 대부분 자바를 쓰고, 얼마 없는 다른 언어 개발자들도 대부분 웹과 관련된 일자리가 많기 때문에 C++로는 먹고 살기 힘들다. 물론 언어는 수단일 뿐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에서 배우는 기술이 다른 곳에 크게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대부분 소켓통신, 시리얼 통신으로 개별 하드웨어 모듈들을 제어하기 때문에 '제어'라는게 사실 공정의 시퀀스를 어떻게 잘 만지는지에 달려있다. 고로 이런 기술은 다른 곳에서 쓰기 힘들다. 한번 FA업계에 발을 담구만 다른 웹 서비스 기반 업계로 이직하기란 정말 하늘에 별따기와 같다는 것이다. 

장점은?

이 분야가 위에서 언급한 단점들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기피하기 때문에, 살아남은 자가 승자가 되는 구조이다. 정말 개발을 잘하는 FA 개발자는 억대 연봉을 받기도 하고, 퇴사하고 회사를 차려서 사장님 소리 들으면서 고급 외제차 세단을 끌고다닌다. 특히 장비 업계가 호황기일 때는 부르는게 값일 만큼 일은 쌓여있는데 할 수 있는 사람이 적어서 돈을 쓸어담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본인이 출장을 다니는데 거부감이 별로 없고, 언어 하나와 장비 프로그램 제어 기술 하나 배워서 주구장창 써먹으면서 고인물이 되고 싶다면 어찌보면 괜찮을 수도 있다. 정말 잘하는 개발자는 갑과 을의 관계도 바꿀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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